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을 이룬 곳이다. 당시 진주는 군량 보급지인 전라도 지방을 지키는 길목이어서 진주성을 두고 조선과 왜의 다툼이 매우 치열하였다. 곧 조선 선조 25년(1592) 10월에 진주목사 김시민(1554∼1592)과 의병대장 곽재우(1552∼1617)이 진주성을 지키면서 왜군 2만명을 격퇴하였다. 하지만 다음해 6월에는 왜군 4만 여명이 진주성을 공격하였는데, 창의사 김천일(1537∼1593)과 경상우병사 최경회(1532∼1593) 등이 성 안의 모든 주민과 함께 성을 지키려고 하였다가 끝내 죽임을 당하였다.
현재 내수문·외수문·암문·장대·포루·촉석루·서문·내북문·함옥헌·진남루·산성사·창렬사·충민사·화약고·관덕당·공신당·포정사·군기고·중영궁등이 자리하고 있다.(다음백과인용)
* 탐방일시:18.4.8일 오후 2:42분~3:32분 마침(50분소요)
▲공북문
▲충무공 김시민 장군
▲쌍충사적비,임진왜란때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전사한 제말장군과 그의 조카 제홍록의 공을 새겼다
▲촉석루
▲촉석루현판
↕의기사:임진왜란 당시(1593)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의 영정과 신위를 모신 사당,
논개는 진주성이 함락되자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으로 유인한 후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하였다
▲의암 내려가는길
▲의암사적비
↕의암,논개가 왜장을 끌어 안고 순국한 바위
▲촉석문
▲촉석루
▲김시민장군 전공비. 촉석정충단비
▲영남포정사
▲북장대
↕진주성포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