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다산정약용 유적지

윤형두 2011. 5. 11. 17:09

 

 

 

 

 

 

 

 

 

 

 

경세유표: 44권 15책. 저자가 강진에서 다산초당으로 옮긴 1808년(순조 8)부터 1817년(순조 17)까지 10년 동안 쓴 미완성 작품이다. 방례초본 이라고도 한다. 주례 의 이념을 근거로 조선의 현실에 맞추어 중앙의 관제, 전제, 세제, 각종 행정기구, 국가경영 일반에 관한 일체의 제도법규에 대하여 먼저 개혁의 대강과 원리를 제시한 후 기존제도의 모순, 실제의 사례, 개혁의 필요성 등을 논리적이고 실증적으로 설명하였다.

목민신서:48권 16책. 필사본. 전라도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해배되던 해인 1818년(순조 18)에 완성한 것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해 자()·집() 등에서 치민과 관련된 자료를 뽑아 수록함으로써 지방관리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지방행정을 쇄신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여유당전서 권16~29에 실려 있다. 

녹로:토목이나 건축공사에서 도르래와 물레 하나씩을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데 쓰이던기구로  1796년(정조20년) 화성 (수원성)성곽을 쌓을때 두틀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화성쌓는광경

 다산길, 폐철길 휴계소에 설치된모습

 

 

 

 

 

 

 

천주실의: 1595년 (선조 28 )마태오 리치가 리치가 중국 구이저우에서 펴낸 한역서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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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1762년 음력6월16일,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1836년 음력2월22일)은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며 호는 사암·탁옹·태수·자하도인·철마산인·다산, 당호는 여유, 천주교 세례명은 요한,시호는 문도입니다.

중농주의 실학자로 전제 개혁을 주장하며 조선 실학을 집대성하였고, 수원 화성 건축 당시 기중가설에 따른 활차녹로( 도르래)를 만들고 그를 이용하여 거중기를 고안하여 건축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유교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당대 조선을 지배한 주자학적 세계관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시도하였으며 문집으로 유배 생활 중 대부분이 저술된 여유당전서가 있습니다.

소재지:경기도 조안면 능내리 산75-1  T.031-590-2837

관람시간:오전9시-오후6시

관람료: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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